김준 작가는 현대 사운드 아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소리의 채집과 재생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철학적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연의 소리를 정교하게 포착하고, 이를 인간의 경험과 연결해 장소성을 가진 기록으로 변환하는 방법론이다. 작가는 레지던시를 기반으로 각 장소를 장시간 탐험하며 소리를 기록한다. 일시적 방문자와는 달리, 하나의 장소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특징적인 소리를 포착할 수 있다. 파도 소리는 매일 다르며, 산의 소리도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이처럼 소리에 담긴 시간과 계절, 장소의 감각을 기록하기에, 녹음된 소리만으로도 그 공간의 이미지가 선명히 떠오른다. 김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 관객들은 종종 그 장소에 직접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뉴질랜드, 호주, 동해의 파도 소리가 각기 다르지만, 작가는 이러한 구분보다는 대자연의 다양한 울림을 통해 관객 개개인이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그간 김준 작가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측정이다. 조정하거나 분노하거나 비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측정”(이영준, <예술, 창조하지말고 측정하자>, kimjoon.de) 하는 예술가 혹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는 체험”(임태훈, <사운드스케이프의 발견>, kimjoon.de)을 가능케 하는 예술가, 누군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서 ‘나는 소리’를 관객과 만나게 하는(김남시, <나는 소리, 들리는 소리, 들려주는 소리>, kimjoon.de) 예술가라는 의견으로 잠시 종합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평가들의 공통점은 김준 작가는 소리를 만들거나 악기화하려 하지 않고, 잠시 관객의 귀쪽으로 가져오는 작가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작업 과정은 세심하고 체계적이다. 첫 단계는 자연의 소리를 직접 채집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한 녹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평창의 물소리, 바람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 등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의 일상적 청각 경험을 넘어서는 주파수의 소리까지 수집한다. 이는 마치 현미경으로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이렇게 채집된 소리는 기술적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김준 작가가 소리의 본질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인간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 속 소음을 소재로 ‘소음 오케스트라’(1913)를 꾸리려고 했던, 오늘날 사운드 아트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지 루솔로의 작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루이지 루솔로는 도시의 소음을 불협화음으로 간주하고, 이를 조절해 악기로 만들고 싶어했다. 반면 김준 작가는 그저 사운드를 채집하고 무심히 툭 던져놓는 배치만으로 무대를 자연화한다. 환경을 연주하기보다는 연주를 환경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은 들으면서 어떤 장소에 놓이기도 한다.
본격적인 악기 연주자들과 협업했던 '미래음악 : 클래식랩 융합 레지던시 쇼케이스 <우오, 욱오(郁烏), 백오(白烏)>'(플랫폼엘, 2024.12.13)은 이러한 그의 예술적 비전이 완벽하게 구현된 사례다. 자연의 소리와 클래식 악기의 조화는 단순한 병치가 아닌, 하나의 통합된 청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웅덩이에 고이는 소리,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 등으로 구성한 김준의 ‘자연 오케스트라’는 공연의 핵심적 요소로 기능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들리는 소리를 넘어, 공간 전체를 통해 전달되는 총체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공간에 녹아든 자연의 소리를 통해 평창의 자연 속으로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자연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섬세한 균형감각을 작가는 추구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과의 교감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의 작업은 현대 예술에서 자연과 기술,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특히 환경 문제와 기술 발전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그의 작업은 예술을 통한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오, 욱오(郁烏), 백오(白烏)>의 공연장에서 그의 사운드 스케이프 연출 방법에 있어 독특한 점을 꼽으라면 그가 디지털로 소리를 변환했으면서도 현장에 인스톨하는 방식을 매우 아날로그적으로 취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컴퓨터나 디지털 앰프등의 비물질적인 인터페이스를 멀리하고, 그저 사운드 파일이 담긴 SD카드를 특정한 시점에 툭 집어넣고 빼면서 현장을 지휘했다. 직접 손으로 넣고 빼는 행위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다소 제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사운드 아트 공연들은 물리적 연결 행위 자체를 퍼포먼스의 핵심으로 활용해 왔다. 1963년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는 관객이 자석식 테이프 헤드를 벽에 붙은 오디오 테이프 조각들 위에서 움직이게 함으로써, 관객이 직접 테이프와 재생 장치를 연결하여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플레이헤드를 테이프 조각들에 이리저리 문지르는 행위는 소리정보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관객이 작품의 수용자가 아니라 정보생산에 적극적 참여자가 되게 만든다. 접촉을 시도하는 인간 자체가 미디어가 되는 일인 것이다.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작품 <Mikrophonie>(1964-5)에서도 연주자가 마이크와 필터를 실시간으로 연결·조작하여 전자음과 악기음을 결합했고, 이 인터페이스 조작 퍼포먼스가 작품의 핵심이었다. 이 경우 마이크를 주변 사물에 문지르는 행위는 마이크를 수용의 미디어가 아니라 생산의 미디어로 만들고, 듣기가 곧 연주가 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인간 플레이어 자신이 소리 연주의 한 부분이 되게 만든다. 사운드 아트에서 무언가를 "연결한다(plug-in)"는 행위는 단순한 기술적 동작을 넘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김준의 작업에서 물리적인 케이블을 꽂는 행위는 두 개체를 이어 새로운 회로와 흐름을 만드는 것을 뜻하며, 이는 곧 연결과 소통, 활성화의 상징이 된다. SD카드를 플레이어에 꽂는 순간에 자연의 소리가 공연장으로 들어온다. 마우스의 쉬운 딸깍거림이 아니라 두 손으로 고요히 장치 안에 넣는 행위는 이 소통의 경건함을 만들어낸다. 관객이 서 있는 공간 자체가 살아 숨 쉬며 감정을 지닌 존재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가 강조하는 자연 소리와 그를 둘러싼 물질적 요소들은 '장소가 울고 있다'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 또 하나의 콜라보 전시인 <마른 꽃>(아트아카이브리드모어, 25.02.25~04.05)에서 김준 작가는
차승연 디렉터와의 협업을 통해 소리가 단순한 음향적 재현이 아니라 장소와 얽힌 기억과 감정의 저장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다시 강조한다. 그의 작업은 이제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느끼고', '냄새 맡는' 총체적인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는 도시 속에서 간접적으로 자연을 체험하는 방식이자, 장소가 갖는 기억의 파편들이 울려 퍼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도록에서 김준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강원도 자작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길게 설명한다. 자작나무의 흰 껍질과 노란 단풍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묘사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확장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공기 속에 녹아든 습기의 미묘한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시간적 흔적이 존재한다. 자연의 감각은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사운드 아카이브 작업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바람에 흐르는 음악〉이라는 작품에서 스피커는 음향 기기가 아니라, 장소의 울림을 품고 있는 하나의 존재로 기능한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자작 나무 몸체의 따뜻한 결이 조각적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그 안에 저장된 소리는 과거를 더듬어 가는 매개체가 된다. 소리는 만질 수 없는 속성을 지니지만, 김준은 이를 물리적으로 저장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 장소의 감정을 체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장소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공간적 좌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 속에서 변주되는 점이 중요하다. 김준이 전라남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은, 결국 소리가 단순한 청각적 요소를 넘어 시간과 기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김준의 사운드 아카이브 작업은 장소의 울림을 포착하는 예술적 시도이다. 우리가 지나치는 자연의 소리들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시간의 흔적이자 감정의 표출이다. 장소가 울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그곳이 간직한 기억과 역사가 소리를 통해 다시금 살아난다는 의미다. 김준의 작품은 그러한 장소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과정이며, 우리에게 잊혀진 공간의 감정을 다시금 마주하게 하는 예술적 실천이 된다.
자기소개

연사: 오영진 Oh, YoungJin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21.12.06~19), <AI공포라디오쇼>(2022.08.04. 아트센터나비), <ChatGPT WAR 1부>(2023.06.23. 플랫폼엘, KADA, NMARA), <창조적 경계: AI문장채굴꾼>(2024.10.10. CT페어 1섹션)을 연출했다.